영화 리뷰 및 감상평

영화 더 테러 라이브|폭탄 테러범이 전화했는데 신고하지 않았다, 앵커가 생방송을 택한 이유

valtstory 2026. 10. 29. 19:12

※ 이 글에는 영화 더 테러 라이브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방송 도중 한 청취자가 전화를 걸어와 다리를 폭파하겠다고 말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보통은 경찰에 신고하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일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 더 테러 라이브의 앵커 윤영화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처음에는 장난전화라고 생각했던 남자의 말대로 실제 마포대교가 폭발하자 윤영화는 자신에게만 테러범과 연결된 전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사람이 위험한 국가적 재난입니다.

하지만 윤영화에게는 동시에 다시 뉴스 앵커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독점 정보가 됩니다.

그는 바로 신고하기보다 보도국장과 거래합니다.

테러범과의 전화통화를 독점 생중계하는 대신 자신을 다시 메인 뉴스에 복귀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이 순간부터 영화의 질문은 단순히 “테러범을 잡을 수 있을까”에서 달라집니다.

사건을 전달해야 하는 사람이 사건을 자신의 기회로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에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하면서 폭탄이 몇 번 터지는지, 테러범의 정체가 무엇인지보다 한 가지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사건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언론인이 그것을 신고해야 할 재난이 아니라 독점해야 할 특종으로 보는 순간, 보도는 어디까지 뉴스이고 어디부터 사건의 일부가 되는 걸까.


마포대교가 폭발한 순간 윤영화에게는 두 개의 사건이 동시에 시작됐다

첫 번째 사건은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다리가 폭발했고 사람들이 위험에 놓였습니다.

경찰과 구조기관이 움직여야 하는 재난입니다.

하지만 윤영화에게는 두 번째 사건도 동시에 시작됩니다.

자신만 테러범과 직접 통화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위험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의 경력을 다시 살릴 기회가 나타납니다.

윤영화는 그 두 사건을 분리하지 못합니다.

테러를 막는 것과 자신의 복귀를 동시에 해결하려 합니다.

저는 바로 이 지점부터 윤영화의 판단이 위험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건에서도 공정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믿기 쉽습니다.

하지만 내가 얻을 것이 커질수록 무엇이 공익이고 무엇이 욕심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윤영화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테러범과 통화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테러가 자신에게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신고하지 않은 몇 분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윤영화의 위치를 바꿨다

테러범의 전화가 실제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윤영화가 바로 신고했다면 그는 중요한 목격자이자 제보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점 생방송을 선택하면서 역할이 달라집니다.

이제 그는 사건을 밖에서 전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테러범과 직접 대화하고, 질문을 선택하고, 요구를 전달하며, 전국의 시청자가 무엇을 듣게 될지를 결정하는 사람이 됩니다.

테러범 역시 그 생방송을 자신의 목적에 이용합니다.

결국 방송국과 테러범 모두 윤영화가 가진 생방송이라는 통로를 필요로 합니다.

언론이 사건을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진행 조건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뉴스가 사건을 전달하는 창문이어야 한다면,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그 창문 자체가 사건을 움직이는 장치로 바뀝니다.


윤영화는 왜 테러보다 자신의 복귀를 먼저 계산했을까

윤영화를 단순히 시청률에 미친 나쁜 앵커라고만 보면 영화는 너무 쉬워집니다.

그에게는 메인 뉴스 자리에서 밀려났다는 상황이 있습니다.

자신이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모두가 인정할 만한 큰 특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사건이 자신의 전화기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윤영화에게 이 사건은 직업윤리와 욕망이 정확히 충돌하는 시험처럼 보입니다.

그는 자신이 방송을 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사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설명 안에 자신의 복귀라는 보상이 함께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할 때도 그것이 모두를 위한 행동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이익과 공익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나는 정말 누구를 위해 이 선택을 하고 있는가”를 한 번 더 묻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보도국장은 테러를 막는 사람보다 방송을 성공시키는 사람이 필요했다

윤영화 개인의 욕망만으로 생방송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방송국 역시 이 사건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합니다.

독점이라는 단어에는 경쟁사가 갖지 못한 정보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큰 사건일수록 독점의 가치는 더 커집니다.

그래서 조직은 윤영화의 욕망을 막기보다 이용합니다.

윤영화는 뉴스 복귀를 원하고 방송국은 시청자를 붙잡을 독점 콘텐츠를 원합니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집니다.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문제가 윤영화 한 사람의 인격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평가 기준이 시청률과 독점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면 다른 윤영화가 나타나도 비슷한 선택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욕심이 위험해지는 순간은 그 욕심에 보상을 주는 조직의 기준까지 만났을 때입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사람의 고통도 방송에서 ‘장면’이 될 수 있다

실제 사건을 보도하려면 현장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여주지 않으면 시청자가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재난 현장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결정하는 기준입니다.

사람의 위험을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장면과 시청자를 화면에 붙잡아두기 위해 자극적으로 사용하는 장면은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방송하는 사람은 그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특히 생방송에서는 편집을 통해 다시 판단할 시간도 거의 없습니다.

누군가의 공포와 죽음이 실시간으로 시청률을 만드는 이미지가 될 수 있습니다.

재난 보도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비극을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비극을 이해시키기 위해 보여주는 것인지 비극 자체를 볼거리로 만들고 있는지 구분하는 데 있을 수 있습니다.


테러범의 요구를 생중계하는 순간 언론은 누구의 확성기가 되는가

테러범은 단순히 폭탄을 터뜨리는 것만 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요구가 전국에 전달되기를 원합니다.

보상금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그 요구를 많은 사람이 듣게 만들려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언론은 어려운 선택을 만납니다.

테러범의 요구를 전달하지 않으면 사건의 원인과 협상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요구를 그대로 생중계하면 폭력을 사용한 사람이 가장 큰 방송시간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누군가는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더 큰 폭력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영화 속 상황을 현실의 모든 사건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질문은 유효합니다.

알 권리를 위해 범인의 말을 전달하는 것과 범인이 원하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은 어디에서 갈리는가.


윤영화는 인터뷰어였지만 점점 협상가와 인질이 되어갔다

방송이 시작될 때 윤영화는 자신이 상황을 통제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던지고 테러범의 답을 끌어내며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방송을 진행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테러범은 윤영화가 예상한 인터뷰 대상이 아닙니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추가 피해를 만들 수 있고 윤영화 자신에게까지 직접적인 위협을 가합니다.

그러면서 관계가 뒤집힙니다.

처음에는 윤영화가 테러범의 전화를 특종으로 이용하려 했습니다.

나중에는 테러범이 윤영화의 생방송과 지위를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타인을 이용해 기회를 만들려던 사람이 오히려 자신이 만든 무대에서 가장 빠져나오기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이 영화의 강한 아이러니입니다.


21억과 대통령의 사과가 등장하자 사건은 숫자와 정치의 문제가 됐다

테러범은 구체적인 요구를 내놓습니다.

그 순간 방송은 단순한 사고 보도에서 협상의 무대로 변합니다.

얼마를 지급할 것인지, 누가 사과할 것인지, 어느 요구까지 받아들일 것인지가 새로운 뉴스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큰 숫자와 정치적 요구가 앞에 나오면 놓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이미 피해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생방송 화면에는 계속 숫자와 요구조건, 대응 전략이 등장하지만 피해자의 삶은 그만큼 자세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재난을 다룰 때 자주 생기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몇 명이 다쳤는지, 피해액이 얼마인지 수치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수치가 사람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사건을 이해한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숫자는 재난의 규모를 보여줄 수 있지만 한 사람이 잃은 삶의 무게까지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테러범의 사연을 이해하는 것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다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테러범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도 조금씩 드러납니다.

그 배경을 알게 되면 처음보다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의 고통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고 책임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았다고 느낀다면 분노가 커질 수 있습니다.

그 분노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유를 이해한다고 폭탄을 터뜨린 행동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폭력은 자신의 억울함과 직접 관련이 없는 다른 사람까지 위험에 빠뜨립니다.

따라서 두 질문은 동시에 남겨야 합니다.

왜 한 사람이 이런 극단적인 분노까지 가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 권리가 생기는가.

원인을 이해하는 것은 재발을 막기 위해 필요하지만, 원인을 이해한다는 이유로 폭력의 책임까지 지워서는 안 됩니다.


정부의 대응도 사람보다 ‘화면에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가까워지는 순간이 있다

생방송이 시작되면 대응하는 기관 역시 방송을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모든 판단은 현장에 있는 사람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시청자가 동시에 지켜봅니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 선택이 가장 안전 한가만큼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도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책임 있는 사람이 사과하면 약해 보일지, 요구를 거절하면 단호하게 보일지 같은 정치적인 계산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재난 대응은 사람을 살리는 문제와 이미지를 관리하는 문제가 섞입니다.

윤영화가 자신의 복귀를 계산한 것과 규모는 다르지만 구조는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모두가 사건 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자신의 위치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함께 봅니다.

위기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아무도 책임을 생각하지 않는 상태뿐 아니라 모두가 책임보다 자신의 위치부터 지키려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시청자는 이 생방송에서 완전히 무관한 사람일까

방송국이 자극적인 생방송을 계속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보기 때문입니다.

시청자가 채널을 돌린다면 시청률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재난 보도의 문제를 언론사만의 욕심으로 정리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계속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더 강한 장면이 나오면 화면에서 눈을 떼기 어렵기도 합니다.

언론은 이런 관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심이 광고와 시청률, 영향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좋은 보도환경을 만들려면 언론의 기준뿐 아니라 소비하는 사람의 태도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자극적인 재난 보도를 계속 클릭하고 시청한다면 방송사는 그것을 사람들이 원하는 뉴스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특종이라는 말은 왜 윤영화의 판단을 그렇게 빠르게 바꿨을까

특종은 기자에게 큰 성과입니다.

남들이 모르는 사실을 먼저 찾아 알리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특종을 원하는 마음 자체를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먼저 보도하는 것이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보다 중요해질 때입니다.

또 사람의 안전을 지키는 것보다 독점권을 유지하는 일이 앞설 때입니다.

윤영화가 가진 정보는 분명 엄청난 특종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경찰과 구조기관에 최대한 빨리 전달해야 할 위험정보이기도 합니다.

두 가치가 충돌할 때 무엇을 먼저 선택하는지가 직업윤리의 기준이 됩니다.

좋은 특종은 다른 사람이 놓친 진실을 먼저 알리는 것이지만, 사람의 안전을 늦춰야만 독점할 수 있는 정보라면 먼저 잡았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보도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생방송은 수정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더 강한 책임이 필요하다

녹화방송이라면 잘못된 표현을 편집할 수 있습니다.

사실 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피해자의 신원을 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방송에서는 한 번 말한 내용이 바로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속도가 빠를수록 판단 기준은 오히려 더 분명해야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어디까지 말할 것인지, 범인의 요구를 그대로 전달할 것인지, 위험한 장면을 계속 보여줄 것인지 즉시 결정해야 합니다.

윤영화는 자신의 진행 능력을 믿습니다.

하지만 진행을 잘하는 능력과 위기 상황에서 윤리적인 판단을 잘하는 능력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빠르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언제 말을 멈추고 확인해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윤영화의 추락에는 자신의 선택만큼 방송국의 필요도 있었다

조직은 사람이 필요할 때 그 사람의 능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같은 사람을 조직의 위험요소로 볼 수도 있습니다.

윤영화는 생방송을 성공시킬 수 있는 동안에는 방송국에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테러범과 직접 연결되어 있고 시청자의 관심을 붙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송이 통제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조직은 한 개인을 보호하는 것보다 조직 전체를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윤영화 역시 자신이 만들어온 방송의 논리를 그대로 돌려받는 느낌을 줍니다.

그가 사람의 비극을 방송에 필요한 소재로 바라봤듯, 조직 역시 윤영화를 방송에 필요한 자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성과를 만드는 수단으로만 보는 조직에서는 오늘 가장 필요한 사람도 내일 가장 쉽게 버려질 수 있습니다.


언론이 질문하는 척하면서 이미 원하는 답을 정해놓을 수도 있다

인터뷰는 질문과 답으로 구성됩니다.

겉으로 보면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어떤 질문을 선택하고 어느 답을 반복해서 보여주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생방송에서 진행자는 시청자가 사건을 이해하는 방향에 큰 영향을 줍니다.

누군가를 처음부터 악인으로 규정할 수도 있고, 반대로 지나치게 피해자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인터뷰는 강한 질문만 던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이미 만든 결론에 상대의 말을 끼워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합니다.

이 영화에서 윤영화는 테러범을 통제하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방송 역시 방송국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통제됩니다.

누가 질문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가만큼 그 질문을 가능하게 만든 조직과 이해관계가 무엇인지도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생각|내가 윤영화였다면 정말 바로 신고했을까

영화를 보면서 저라면 실제로 윤영화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지금은 당연히 경찰에 바로 신고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걸려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가 오랫동안 원했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인생 최대의 기회가 눈앞에 나타났다면 단 한 번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조금만 더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가 직접 통화하면 상황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이유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윤영화의 욕망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공익적인 선택처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느꼈습니다.

내가 얻을 것이 큰 상황일수록 좋은 의도라고 생각되는 선택도 한 번 더 의심해 보는 기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진실을 전달하는 것과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사실을 숨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여주지 말자”는 말 역시 쉽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공공기관의 잘못이나 재난의 심각성을 감추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원칙이 모든 장면을 아무 제한 없이 보여줘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피해자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면서도 사건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정보와 단순한 충격을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론윤리를 검열과 같은 의미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엇을 보여줄지 선택하는 책임에 가깝습니다.

진실을 숨기지 않는 것과 사람의 고통을 제한 없이 소비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테러를 보도하지 않으면 되는가라는 쉬운 결론도 위험하다

영화의 문제를 보고 나면 아예 테러범의 요구를 방송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간단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큰 사건이 벌어졌다면 시민에게 상황을 알리고 위험지역을 전달해야 합니다.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도 감시해야 합니다.

범죄의 배경에 사회적으로 살펴야 할 문제가 있다면 그것도 취재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보도 여부보다 방식입니다.

범인의 주장을 검증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것과 그 주장이 왜 나왔는지를 취재해 설명하는 것은 다릅니다.

범인의 요구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것과 사건이 끝난 뒤 충분한 확인을 거쳐 보도하는 것도 다릅니다.

좋은 언론은 침묵하는 언론이 아니라 긴급한 상황에서도 속도와 공익, 사실 확인 사이의 기준을 버리지 않는 언론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윤영화가 피해자가 된 뒤에야 사건을 보는 기준도 달라졌다

처음의 윤영화에게 폭탄은 화면 밖에 있습니다.

그에게는 위험하지만 동시에 뉴스의 소재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안전까지 직접 위협받기 시작하면 테러는 더 이상 특종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가 됩니다.

이 변화는 매우 씁쓸합니다.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정보로 이해할 때와 자신에게 직접 닥쳤을 때 전혀 다르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난보도에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피해자가 되어보지 않아도 화면 속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나 자신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고통을 전달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사건과 거리를 유지하는 냉정함뿐 아니라 화면 속 사람을 단순한 소재로 보지 않을 정도의 거리감이기도 합니다.


뉴스의 성공은 시청률만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방송사 입장에서는 시청률이 중요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뉴스를 봤는지는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하지만 높은 시청률이 좋은 보도를 자동으로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충격적인 장면 때문에 많이 볼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가 빠르게 퍼져도 순간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뉴스에는 시청률과 별개의 성공 기준이 필요합니다.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했는지, 추가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 권력을 검증했는지, 피해자를 불필요하게 노출하지 않았는지도 평가해야 합니다.

많이 본 뉴스와 잘 만든 뉴스는 겹칠 수도 있지만 항상 같은 것은 아닙니다.


영화의 아쉬움|언론 비판이 윤영화와 보도국장의 탐욕에 조금 집중되기도 한다

더 테러 라이브의 가장 큰 장점은 좁은 방송 스튜디오 안에서 엄청난 규모의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윤영화가 전화 한 통과 화면 몇 개만으로 외부의 테러와 계속 연결되면서 공간은 좁지만 긴장감은 계속 커집니다.

특히 생방송이라는 설정 덕분에 실수 하나가 바로 전국에 전달될 수 있다는 압박이 효과적으로 살아 있습니다.

다만 이번 주제로 보면 언론의 문제를 윤영화와 보도국장의 욕망에 집중해 보여주는 면도 있습니다.

현실의 뉴스 제작은 기자 한 명과 국장 한 명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취재기자와 편집자, 데스크와 제작진, 경영진 등 여러 단계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재난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문제도 개인 몇 명이 탐욕스러워서만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어떤 보도에 높은 평가와 보상이 돌아가는지, 경쟁사보다 먼저 보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게 취급되는지, 잘못된 생방송을 멈출 수 있는 내부 기준이 있는지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또 테러범의 사회적 배경 역시 강한 문제의식을 만들지만 후반부의 빠른 전개 때문에 그 목소리와 폭력의 책임을 충분히 분리해서 살펴볼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개인의 탐욕을 비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조직 전체가 그런 선택에 보상을 주는지까지 더 깊게 다뤘다면 언론에 대한 질문도 더 오래 남았을 것 같습니다.


재난 앞에서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방송의 독점권이 아니라 사람의 안전이다

영화를 끝까지 따라가면 처음의 선택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윤영화가 폭발을 확인한 바로 그 순간입니다.

그때 경찰에 신고하고 자신이 가진 정보를 공유했다면 이후의 모든 일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테러범은 다른 방법을 찾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방송 복귀와 독점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응이 늦어지는 문제는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언론의 속도보다 먼저 기준의 순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걸려 있다면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다음에 취재와 보도 경쟁이 와야 합니다.

순서가 바뀌는 순간 특종을 위한 판단이 사람을 위한 판단처럼 포장될 위험이 커집니다.


마무리|윤영화가 생방송을 시작한 순간 테러범만 사건을 이용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던 앵커 윤영화가 테러범의 전화를 받고 실제 마포대교 폭발을 목격하면서 시작되는 스릴러입니다.

설정만 보면 앵커와 테러범이 생방송으로 벌이는 심리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누가 더 상대를 잘 속일 것인지, 다음 폭발을 막을 수 있는지, 테러범의 정체가 무엇인지 따라가는 재미도 강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테러범보다 윤영화가 생방송을 선택한 첫 순간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그는 위험을 알게 된 사람입니다.

동시에 다른 방송사에는 없는 정보를 가진 사람입니다.

두 위치가 겹치면서 판단이 흔들립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대한 빠르게 정보를 공유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의 독점권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조금 더 오래 통화를 유지하면 엄청난 특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윤영화는 후자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방송국도 그 선택을 막지 않습니다.

윤영화는 뉴스 복귀 기회를 얻고 방송국은 높은 관심을 얻습니다.

테러범 역시 자신의 요구를 전국에 전달할 수 있는 무대를 얻습니다.

서로 목적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생방송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단순히 무책임한 앵커를 비판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비극이 한쪽에는 분노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고, 다른 한쪽에는 경력을 되찾을 기회가 되며, 또 다른 조직에는 시청률을 높일 콘텐츠가 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영화에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테러범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더라도 폭력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억울함을 알리는 것과 무관한 사람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언론이 테러사건을 보도하는 것 자체도 잘못은 아닙니다.

시민에게 위험을 알리고 정부의 대응을 확인하며 사건의 원인을 취재하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문제는 보도의 목적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보여주는 것인지, 사람들이 계속 보게 만들기 위해 보여주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질 때입니다.

윤영화에게도 처음에는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신고하고 정보를 넘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을 자신의 재기의 기회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아이러니는 그 선택으로 자신이 방송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 역시 방송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점입니다.

저에게 이번 더 테러 라이브는 폭탄 테러범과 앵커가 맞붙는 긴장감 높은 생방송 영화에서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재난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이 그것을 막아야 할 위험보다 독점할 수 있는 정보로 바라보는 순간, 언론은 사건을 전달하는 관찰자에서 사건을 움직이는 이해관계자로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남는 질문도 테러범의 정체만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가장 끔찍한 하루가 나에게 가장 큰 기회가 될 때 나는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

그리고 언론이 사람의 고통을 전달해야 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 알고 싶어 하고, 어디부터는 보지 않아도 되는가.

윤영화가 신고 대신 생방송 버튼을 선택한 순간, 테러범만 사건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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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체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보게 만들고 어떤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지가 권력과 연결되는 과정을 다른 시대의 이야기로 이어서 보고 싶다면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 리뷰|역사와 상상력이 만난 색다른 사극 영화 도 함께 읽어볼 만합니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생방송과 뉴스 편집이 한 사건을 대중이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면, 광대들: 풍문조작단에서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풍문과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권력자의 모습 자체를 바꾸는 과정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진실을 알고 있는 것과 그 사실을 사회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왜 다른 문제인지 이어서 생각해보고 싶다면 영화 올빼미|진실을 직접 봤지만 말할 수 없었다, 문제는 목격보다 그 사람의 위치였다 도 이어서 읽어보세요. 더 테러 라이브가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언론이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묻는다면, 올빼미는 반대로 진실을 직접 보고도 권력이 없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떤 위험에 놓이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