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이 글에는 영화 우리들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우리들을 처음 보면 아이들의 친구 관계를 다룬 작은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반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선은 방학을 앞두고 지아를 만나 가까워지고, 두 아이는 짧은 시간 동안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고 교실이라는 집단 안으로 다시 들어가면서 관계는 달라집니다. 새로운 친구가 생기고, 누가 누구와 더 친한지가 중요해지고, 사소했던 서운함이 점점 큰 상처로 바뀝니다.

줄거리만 보면 친구 사이의 질투와 다툼을 다룬 성장영화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질문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친구가 그렇게 필요했던 아이들은 왜 자신이 외롭지 않기 위해 다른 아이를 외롭게 만들어야 했을까요.

누가 착하고 누가 나쁜지를 정하는 것보다, 관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두려움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행동으로 바뀌는지를 보는 것이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선에게 친구는 단순히 같이 노는 사람이 아니었다

선에게 친구는 단순히 쉬는 시간에 함께 노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실에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점심을 누구와 먹는지, 쉬는 시간에 누구 옆에 서 있는지, 체육시간에 누구와 같은 편이 되는지는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한두 번 반복되면 단순히 친구가 없는 상태를 넘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이 지아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이 이해됐습니다.

자신을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에게는 큰 변화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만큼 지아를 잃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저는 여기서 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이 반드시 다른 사람을 더 잘 배려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다시 혼자가 될까 두려운 사람은 관계를 더 강하게 붙잡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과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 불안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행동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아는 왜 선에게서 멀어졌을까

지아를 단순히 배신한 친구라고 보면 이야기는 쉽게 정리됩니다.

처음에는 선과 가까웠지만 다른 친구들과 친해진 뒤 선에게서 멀어졌으니 나쁜 친구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아에게도 자신이 집단 안에서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둘만 있을 때는 선과 친하게 지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여러 아이가 모인 교실에서는 관계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누구와 친한지가 자신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아이들의 관계에서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미 밀려나 있는 사람과 거리를 두는 선택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행동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왜 그런 행동이 생겼는지를 이해하지 않고 “원래 못된 아이”라고 정리하면 같은 상황은 계속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언제나 정확하게 나뉠까

제가 우리들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부분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아주 단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한 장면에서는 상처를 받지만 다른 순간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결국 둘 다 똑같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학교폭력이나 따돌림 문제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하게 나누고 싶어 합니다.

분명 그렇게 구분해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관계 갈등을 하나의 역할로만 설명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는 과정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먼저 상처를 줬다고 해서 그 이후의 모든 행동이 정당해지는 것도 아니고,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 아이가 겪었던 상처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이 영화가 그런 복잡함을 억지로 정리하지 않는 점이 좋았습니다.


아이들은 왜 다른 사람의 약점을 공격하게 될까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면 상대에게 했던 이야기들이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알고 있던 비밀과 약점을 싸움이 시작된 뒤 이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장면들은 아이들의 갈등을 보여주지만 어른들의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이가 좋을 때는 이해했던 행동을 관계가 나빠진 뒤에는 비난할 이유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상대가 나를 공격했다고 느끼면 나 역시 상대가 가장 아파할 말을 찾게 됩니다.

문제는 그렇게 한 번 선을 넘은 뒤에는 원래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조차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친구를 빼앗겼다는 서운함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이 목적처럼 바뀔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관계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만큼 아프기를 바라기 시작하면 관계는 쉽게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친구를 독점하고 싶은 마음도 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친구가 다른 사람과 가까워졌을 때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이상한 감정이 아닙니다.

특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친구인데 그 사람에게 나는 여러 친구 중 한 명에 불과하다고 느끼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친구를 좋아하는 것과 그 사람의 관계를 통제하려 하는 것은 구분해야 합니다.

“나와 가장 친해야 한다”는 기대가 커질수록 상대의 다른 관계까지 위협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우정에도 소유욕이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오히려 상대가 내 기대대로 행동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친구라는 이유로 상대의 모든 선택을 통제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관계는 서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서로에게 다른 관계가 있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더 오래 유지될 수 있다고 봅니다.


관계에서 밀려나는 것이 왜 그렇게 두려울까

어른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친구 몇 명 없어도 괜찮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머리로는 친구의 숫자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매일 같은 교실에 들어가야 하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누가 나를 피하는지, 누구끼리 웃는지, 내 자리만 비어 있는지를 계속 확인하게 된다면 작은 행동 하나도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라면 그런 상황에서 정말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지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해서 혼자 있는 것과 집단에서 밀려나 혼자가 되는 것을 전혀 다르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무조건 강해지라고 말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법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아이가 계속 밖으로 밀려나는 구조가 왜 만들어지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일입니다.


어른들은 왜 아이들의 관계를 알아차리지 못할까

아이들의 갈등을 보면 자연스럽게 어른들의 역할도 생각하게 됩니다.

학교에서 따돌림이나 갈등이 발생하면 우리는 종종 “선생님은 몰랐나”, “부모는 왜 눈치채지 못했나”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관계는 어른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폭력적인 행동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전에도 눈빛과 말투, 단체에서 빼는 행동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배제가 계속될 수 있습니다.

아이 역시 자신의 상황을 부모나 선생님에게 모두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말하는 순간 자신이 더 약한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할 수도 있고, 어른이 개입한 뒤 상황이 더 나빠질까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른이 모든 갈등을 미리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이가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그냥 사이좋게 지내”, “네가 먼저 양보해”, “걔도 이유가 있었겠지”라는 식으로 너무 빨리 정리하지 않는 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갈등을 해결하기 전에 먼저 그 아이가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지 충분히 듣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학교폭력을 개인의 성격 문제로만 보면 놓치는 것

문제가 생기면 가장 쉬운 설명은 “그 아이가 원래 못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상처를 주는 행동에는 분명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 아이를 문제 있는 아이로 지정하는 것만으로 관계의 구조까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누가 인기 있는 아이인지, 누가 선택받는지, 누구와 어울려야 안전한 지가 중요해지는 집단에서는 한 아이가 빠져도 또 다른 아이가 밀려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특정 가해자 한 명만의 성격이 아니라 집단 전체가 관계를 만드는 방식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들을 보면서 왕따 문제를 “친구가 없는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면 된다”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 한 명을 붙여주는 것보다 아이들이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나도 관계에서 안전한 쪽을 선택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아이들의 행동을 쉽게 비판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화면 밖에서 보면 누가 상처를 주고 있는지 비교적 잘 보입니다.

그래서 “왜 저렇게 행동하지?”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제가 같은 교실 안에 있었다면 정말 항상 약한 친구의 편에 설 수 있었을지는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 친구와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로 나까지 다른 아이들에게 밀려날 수 있다고 느낀다면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을 하니 영화를 훨씬 불편하게 보게 됐습니다.

따돌림을 비판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실제 집단 속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다른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만 “친구를 따돌리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한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른들의 사회에서도 힘 있는 사람과 가까이하려 하고 불리한 사람에게서 거리를 두는 일이 반복된다면, 아이들에게만 다른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일 수 있습니다.


화해보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는 것

친구 사이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에서는 마지막에 서로 사과하고 다시 친해지는 결말을 기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관계에서는 사과했다고 해서 이전의 상처가 바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한 번 들은 말은 오래 남을 수 있고, 상대에게 했던 행동 역시 없었던 일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관계 회복을 무조건 예전처럼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도 하나의 해결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억지로 “다시 친하게 지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관계라고 해서 상처까지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영화가 남긴 아쉬움과 비판

우리들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의 관계를 어른의 언어로 지나치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을 착한 피해자와 나쁜 가해자로 분명하게 나누지 않고, 관계가 변하는 과정에서 각자가 느끼는 두려움과 질투를 가까이 보여줍니다.

반면 이런 섬세함 때문에 관객에 따라서는 책임의 경계가 흐려졌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모든 행동에 사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잘못된 행동의 책임을 줄여주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상처를 준 아이 역시 불안하고 외로웠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을 공격한 행동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어른들의 역할을 조금 더 보여줬다면 학교라는 공간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더 넓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른들의 해결책을 크게 넣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움직이는지 더 직접적으로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이 영화의 힘은 문제의 정답을 알려주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왜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게 만들면서도, 그 행동이 남긴 상처까지 쉽게 용서하지 않는 데 있었습니다.


친구가 많아야 행복하다는 기준부터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 친구 관계가 중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친구가 많고 인기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더 좋은 삶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계의 숫자가 중요해질수록 아이들은 혼자가 되는 것을 실패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까지 따라하거나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조건 많은 친구가 아니라, 적어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한두 개의 관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혼자 있는 시간 자체를 부끄러운 상태로 만들지 않는 분위기도 필요합니다.

혼자 있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는 순간 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무리|친구가 필요했던 마음이 왜 공격으로 바뀌었을까

영화 우리들은 아이들의 친구 관계를 통해 외로움과 질투, 소속되고 싶은 마음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저에게 이 영화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찾아내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관계를 잃을까 두려워할 때 얼마나 쉽게 다른 사람을 밀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선도 친구가 필요했고 지아 역시 자신의 자리를 잃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면 그 관계는 오래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누가 더 나쁜 아이였을까”보다 다른 질문이 남았습니다.

왜 아이들은 서로 좋아하면서도 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에게 상처를 줘야 했을까요.

그리고 그 질문은 아이들에게만 향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도 조직과 인간관계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힘 있는 사람의 편에 서거나, 누군가가 밀려나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관계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어른들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들이 제게 남긴 것은 좋은 친구를 고르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외롭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외롭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이었습니다.


함께 읽어볼 만한 영화 리뷰

친구 관계가 시간이 지나며 의리와 경쟁, 상처로 변하는 모습을 성인의 관계에서 비교해보고 싶다면 영화 친구 리뷰|우정이 의리가 되고 상처가 되는 순간 도 함께 읽어볼 만합니다. 아이들의 관계에서 시작된 소속감과 경쟁이라는 감정이 어른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더 거친 형태로 변하는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친구 리뷰|우정이 의리가 되고 상처가 되는 순간

영화 친구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준석과 동수, 상택과 중호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 관계가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범죄 드라마입니다.학창 시절에는 장난과 싸움을 함께하던 친구들이

valtstory.com

 

한 사람을 환경과 편견으로 먼저 판단하는 시선에 대해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고 싶다면 영화 완득이|가난보다 더 아팠던 편견과 가족을 받아들이는 과정 도 이어서 읽어보세요. 친구 관계의 배제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누군가를 충분히 알기 전에 주변 환경과 선입견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연결해볼 수 있습니다.

 

영화 완득이|가난보다 더 아팠던 편견과 가족을 받아들이는 과정

※ 이 글에는 영화 완득이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영화 완득이를 처음 보면 가난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학생과 조금 별난 교사가 만나 서로 영향을 주는 성장영

valt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