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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이파이브 리뷰 (초능력 설정, 캐릭터 케미, 히어로물)

by valtstory 2026. 4. 9.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한국 히어로물에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마블 스타일의 세계관 구축도 아니고, 거창한 우주적 위협도 없는 이 영화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거든요.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제가 선입견을 꽤 단단히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장기 이식이라는 의료적 설정 위에 초능력을 얹은 이 발상은, 생각보다 훨씬 한국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장기 이식과 초능력이라는 설정,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영화의 핵심 설정은 장기 이식 수술 이후 수혜자에게 초능력이 발현된다는 것입니다. 심장을 이식받은 서진은 제자리에서 트리플 악셀을 뛰어오를 만큼의 괴력을 갖게 되고, 폐를 이식받은 지성은 폐활량을 이용해 주변 사람과 사물을 날려버리는 능력을 지닙니다. 간을 이식받은 약선은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자가 되는 식이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설정이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 의학 현상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는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의학계에서는 세포 키메리즘(Cell Chimerism)이라는 현상이 보고되어 있습니다. 세포 키메리즘이란 장기 이식 후 공여자의 세포 일부가 수혜자의 몸속에 남아 공존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실제로 이식 수혜자가 공여자의 기억이나 취향 변화를 경험했다는 사례들이 소수지만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영화는 이 현상을 극단적으로 과장해 초능력으로 변환시킨 셈인데, 그 방향 자체는 꽤 영리하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특히 흥미롭게 본 부분은 각 능력자에게 손목 문신, 즉 일종의 마커가 나타난다는 설정이었습니다. 이 마커는 일종의 표현형(Phenotype)처럼 기능합니다. 표현형이란 유전자나 외부 요인이 신체에 드러나는 방식을 뜻하는데, 영화에서는 초능력 발현의 외적 징후로 이 문신이 사용됩니다. 덕분에 능력자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장치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그것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열쇠가 됩니다.

다만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 설정이 가진 가능성만큼 서사가 깊게 파고들지는 않는다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서진이 능력을 처음 인지하는 순간, 지성이 접근하는 과정, 약선이 합류하는 흐름 모두 이야기의 속도를 위해 압축된 인상이 강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영화는 능력 발현 직후 인물이 느끼는 혼란과 내면 갈등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보여주느냐가 관객과의 정서적 연결을 결정하는데, 이 영화는 그 부분보다는 사건 전개와 팀 구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습니다.

각 능력자의 능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서진 (히어로명: 나인걸) — 심장 이식 후 발현된 초인적 신체 능력, 괴력과 도약력
  • 지성 (히어로명: 탱크보이) — 폐 이식 후 발현된 초강력 폐활량, 압축 공기 방출
  • 약선 (히어로명: 약손) — 간 이식 후 발현된 치유 능력, 물 섭취 시 자가 회복 병행
  • 선녀 — 신장 이식 후 능력 발현 추정, 본인은 메타인지 부족으로 자각 못 함
  • 영춘 (빌런) — 최장 이식 후 타인의 노화를 흡수해 젊어지는 능력

케미와 오락성, 그리고 빌런이 남긴 아쉬움

이 영화에서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즐거웠던 부분은 캐릭터들 사이의 케미였습니다. 특히 서진의 아버지가 딸의 괴력을 자신의 공으로 착각하며 기세등등해지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단편 코미디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딸의 심박수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과잉보호하는 설정도 웃기면서도 어딘가 현실적으로 공감이 가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비슷한 감정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새로운 역할이나 능력이 생겼을 때 처음엔 설레지만, 그것이 점점 타인의 기대와 시선이 되면서 부담으로 바뀌는 순간 말입니다. 영화의 서진이 딱 그 상황이었습니다. 괴력을 얻었지만 아버지의 감시 속에 강제 은퇴를 경험하고, 능력을 숨기며 살아야 하는 처지가 그 감정을 잘 담고 있었습니다.

반면 빌런 영춘의 서사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는 최장(最長), 즉 가장 긴 장기인 소장을 이식받아 타인의 노화를 흡수하는 능력을 얻은 인물입니다. 여기서 최장 이식이란 소장 이식 수술을 뜻하는데, 실제로 소장 이식은 이식 장기 중 거부반응(Rejection Response) 발생 위험이 가장 높은 수술 중 하나로 꼽힙니다. 거부반응이란 수혜자의 면역 체계가 이식된 장기를 이물질로 인식해 공격하는 현상으로, 이 때문에 소장 이식 수혜자는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출처: 대한이식학회). 영화가 이 의학적 무게감을 빌런에게 입혔다면 더 입체적인 인물이 됐을 텐데, 실제로는 "신이 되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움직이는 단선적 구조에 머물렀습니다.

제 경험상 히어로물에서 빌런이 단조롭게 느껴지면, 주인공들의 최후 대결도 함께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춘이 여러 초능력을 흡수하며 괴물처럼 변해가는 과정 자체는 시각적으로 흥미롭지만, 그가 왜 그토록 젊어지고 싶었는지, 딸과의 갈등이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한 맥락이 얕게 처리된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진 팀업 무비로서의 가능성은 충분히 보였습니다. 팀업 무비란 서로 다른 능력과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뭉치는 구조의 장르를 말하는데, 이 영화는 그 과정 자체를 코미디로 풀어내면서 가벼운 즐거움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선녀가 자신에게 초능력이 없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영화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자가 될 것이라는 복선이 깔려 있다는 점은,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냈습니다.

정리하면, 완사는 아주 치밀하게 짜인 세계관을 가진 영화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독특한 설정과 캐릭터의 케미로 끌고 가는 오락 영화에 가깝습니다. 무거운 히어로 서사보다 가볍고 웃긴 팀업 무비를 원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나서 뭔가 묵직하게 남는 감정을 원하신다면, 기대치를 조금 조정하고 보시길 권합니다. 장기 이식이라는 설정이 단순한 장치로 쓰이기엔 너무 좋은 소재였다는 생각이 계속 남았거든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hDvVSWdSG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