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에는 영화 《수상한 그녀》의 주요 내용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름보다 역할로 불리는 시간이 더 길어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할머니,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사람. 그렇게 오랫동안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내가 원래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삶을 꿈꿨는지는 뒤로 밀릴 수 있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오말순을 보면서 내가 먼저 눈여겨본 것도 갑자기 젊어진 얼굴이 아니었다.
스무 살의 몸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70대에서 20대로 나이가 바뀐 사건보다 오랫동안 가족의 역할 속에 있던 한 사람이 다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70대 오말순에게는 왜 자신의 시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을까
오말순의 삶에는 가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오랫동안 자식을 키웠고 이제는 할머니라는 위치에서 가족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는 거침없는 부분도 있지만 그 안에는 혼자 버텨온 시간과 가족을 중심으로 살아온 세월이 함께 들어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말순이 불행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일이 아니다.
가족을 위해 살아온 시간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오히려 내가 궁금했던 것은 다른 부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오말순이라는 한 개인이 원하는 것은 얼마나 자주 먼저 선택될 수 있었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자식을 챙기는 일이 먼저였을 것이고, 자신의 꿈보다 당장 해결해야 할 생활의 문제가 더 중요했던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선택이 하나씩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 하고 싶은 일을 미루는 것이 특별한 희생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원래 그렇게 사는 것처럼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수상한 그녀》의 판타지는 단순한 회춘보다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젊은 몸은 말순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었다기보다 오랫동안 뒤로 미뤄두었던 자신을 다시 앞으로 꺼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얼굴은 스무 살이 됐지만 살아온 시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진관을 나온 뒤 말순의 외모는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까지 스무 살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몸은 젊어졌지만 오랫동안 살아오며 겪었던 경험과 감정,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설정 때문에 오두리는 단순히 젊은 여성이 아니다.
스무 살의 얼굴 안에 수십 년의 시간이 함께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젊음은 과거로 돌아가는 장치라기보다 같은 사람이 다른 조건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장치에 더 가깝다.
말순일 때와 두리일 때를 나란히 놓아보면 차이가 더 분명하다.
| 70대 오말순 | 20대 오두리 |
|---|---|
| 가족 안에서 엄마와 할머니라는 역할이 먼저 보인다. | 다른 사람이 정해준 역할보다 자신의 선택이 먼저 나타난다. |
| 이미 지나간 시간과 책임이 삶의 중심에 있다. | 앞으로 무엇을 해볼 것인지 생각할 여지가 생긴다. |
| 노래는 과거의 기억에 가까워져 있다. | 노래가 다시 현재의 선택이 된다. |
얼굴이 달라졌기 때문에 새로운 재능이 생긴 것은 아니다.
두리에게 있는 목소리와 감각은 원래 말순에게도 있던 것이었다.
달라진 것은 그 재능을 꺼내놓을 수 있는 조건과 기회였다.
오두리가 되찾은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목소리’였다
이 영화에서 노래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오말순이라는 사람이 다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가족 안에서 말순의 목소리는 잔소리나 강한 성격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많다. 하지만 무대에 선 두리의 목소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듣고 집중하고, 박수를 보내고, 더 듣고 싶어 한다.
흥미로운 점은 목소리가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원래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중심에 놓을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나는 이 부분이 《수상한 그녀》의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꿈을 포기했다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꿈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일들이 계속 앞자리를 차지하면서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었던 일이 없어졌다기보다 그것을 다시 꺼내볼 여유가 없어졌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때도 있다.
새로운 이름 ‘오두리’가 만들어준 작은 자유
외모뿐 아니라 이름까지 바뀐다는 점도 흥미롭다.
오말순이라는 이름에는 이미 오랫동안 살아온 관계가 붙어 있다.
누군가는 그녀를 엄마로 알고 있고, 누군가는 할머니로 기억한다. 이름을 들었을 때 함께 떠오르는 과거와 역할이 이미 많다.
반면 오두리라는 이름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그녀가 누구의 엄마였는지 알지 못하고, 과거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리는 이전보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행동해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나는 사람이 환경을 완전히 바꾸고 싶어 하는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때로는 능력이 부족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는 ‘원래의 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옮기거나 새로운 지역으로 가거나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선택을 하게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수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과거보다 지금의 행동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젊어져야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걸까
여기에서 영화에 대한 한 가지 반론도 생긴다.
말순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순간이 젊은 외모를 얻은 뒤라는 점이다.
젊어진 뒤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무대에 설 기회를 얻으며 새로운 관계도 만들어진다.
물론 이것은 영화의 판타지 설정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보면 씁쓸한 부분도 있다.
오말순의 재능과 경험은 젊어지기 전에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회는 나이가 든 오말순에게는 그런 가능성을 거의 기대하지 않았을까.
사람의 가능성을 젊음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시선이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한지도 돌아보게 된다.
젊으면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나이가 들면 “이제 와서 왜?”라는 말을 먼저 듣기도 한다.
그런 기준이 강해질수록 사람은 실제 능력을 잃기 전에 먼저 자신의 가능성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영화의 판타지를 그대로 부러워하기보다 현실에서는 젊음을 되찾지 않아도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이 이야기를 읽고 싶다.
젊음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앞자리를 되찾았다
결국 오두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핵심을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으로만 남겨두기는 아쉽다.
내가 보기에 말순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스무 살의 얼굴 자체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엄마나 할머니이기 전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도 된다는 시간이었다.
가족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가족을 위해 살아온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자신의 삶 역시 가족과 똑같이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사실이 더 분명하게 보인다.
사람은 여러 역할을 가지고 살아간다.
직장에서는 직장인이고 집에서는 부모나 자녀일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배우자이고 친구다.
그런 역할은 삶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역할만 남고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상한 그녀》가 남기는 희망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했던 삶의 일부를 다시 나에게 돌려주는 선택은 나이에 상관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스무 살이 된 오두리가 되찾은 것은 젊음보다 그것에 더 가까웠다고 본다.
이 주제를 조금 더 이어서 본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나는 이야기
《수상한 그녀》가 나이와 역할 속에서 뒤로 밀린 자신을 되찾는 이야기라면, 《써니》는 오랜 친구들과 재회하면서 어른이 된 뒤 잊고 있던 자기 모습을 다시 발견하는 영화다.
겉모습이 달라졌을 때 사람의 가치는 달라지는가
오두리는 젊은 외모를 얻은 뒤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비슷하게 《미녀는 괴로워》도 외형이 달라진 뒤 같은 목소리와 재능이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작품을 함께 보면 외모와 기회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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