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에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을 ‘적’이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달라지는 것이 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이유로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어느 편인지이고, 그다음에는 나를 공격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된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시작도 그렇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전쟁과 거의 단절된 산골마을 동막골에 인민군과 국군, 그리고 추락한 전투기에서 살아남은 미군 병사가 차례로 들어온다.
전쟁터에서 만났다면 서로 총을 겨누었을 사람들이 한 마을 안에서 마주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동막골 주민들의 반응이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부터 묻지 않는다. 총과 수류탄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현실을 모르는 순진함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질문이 반대로 바뀐다.
아니면 사람을 만나자마자 어느 편인지부터 확인하는 바깥세상이 더 이상해진 것일까.
나는 이 영화에서 전쟁이 멈추는 순간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있었다.
서로를 부르는 마음속의 이름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이다.
처음의 이름|‘적군’이면 그 사람에 대해 더 알 필요가 없었다
국군과 인민군이 처음 동막골에서 마주쳤을 때 두 집단 사이에는 이미 설명이 필요 없는 관계가 만들어져 있다.
상대는 적이다.
그 한 단어면 충분하다.
총을 어디에 겨누어야 하는지, 누구를 경계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을 예상해야 하는지도 이미 정해져 있다.
전쟁은 사람을 이렇게 단순하게 만든다.
한 사람에게는 가족도 있고 과거도 있고 두려움도 있겠지만 군복을 입는 순간 그런 개인적인 정보는 뒤로 사라진다.
남는 것은 소속이다.
영화 초반에 병사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도 비슷하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전에 어느 편인지가 먼저 보인다.
그런데 동막골 사람들에게는 그 구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주민들은 군복의 의미보다 눈앞에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인다.
바깥세상에서는 가장 중요한 정보였던 소속이 이 마을에서는 갑자기 큰 힘을 잃는다.
두 번째 이름|총을 든 군인들이 ‘배고픈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동막골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병사들은 계속 군인으로만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전쟁터에서는 상대의 무기와 움직임을 살펴야 하지만 마을에서는 먹고 자고 생활해야 한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몸이 지치면 쉬어야 한다.
이 순간부터 국군과 인민군이라는 거대한 이름 뒤에 가려졌던 아주 평범한 모습이 드러난다.
나는 이 변화가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멀리서 볼 때는 집단으로 보기 쉽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고 같은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그 사람을 하나의 집단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인민군 한 명’이 아니라 말을 하는 방식이 다른 한 사람이 되고, ‘국군 한 명’이 아니라 두려움을 가진 한 사람이 된다.
거리에서는 쉽게 유지되던 편견이 가까이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불편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실제 사람은 우리가 붙여놓은 짧은 이름표보다 항상 복잡하기 때문이다.
팝콘이 터진 순간|무기가 처음으로 웃음을 만드는 장면
《웰컴 투 동막골》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수류탄이 옥수수 저장고에서 폭발하면서 하늘에서 팝콘이 눈처럼 쏟아지는 장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전혀 현실적인 장면은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수류탄은 원래 사람을 다치게 하는 무기다.
그런데 동막골에서는 그 무기가 옥수수를 터뜨리고 하늘에서 하얀 팝콘을 내리게 한다.
사람들이 죽어야 할 상황이 잠시 웃음과 놀라움으로 바뀐다.
실제로 제작 과정에서도 이 ‘팝콘 비’는 작품의 대표적인 판타지 장면으로 만들어졌고, 영화 속에서는 옥수수 창고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팝콘이 흩날리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나는 이것을 단순한 재미있는 장면보다 영화가 전쟁을 바라보는 방식에 가깝다고 본다.
동막골에 들어온 순간 바깥세상에서 당연했던 기능이 자꾸 바뀐다.
군복은 사람을 구별하는 힘을 잃고, 총은 쉽게 사용되지 않으며, 수류탄조차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터진다.
마치 이 마을에서는 전쟁의 규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세 번째 이름|같이 문제를 해결한 순간 ‘적’이라는 단어가 불편해졌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장 빠르게 달라지는 순간 중 하나는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다.
누가 어느 편인지보다 지금 눈앞의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동막골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반복된다.
처음에는 서로 총을 겨누던 사람들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에 함께 대응하고,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며 서로의 행동을 직접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정보가 하나씩 추가된다.
‘적군’이라는 한 단어만 알고 있을 때는 쉽게 미워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웃는 모습, 두려워하는 모습, 다른 사람을 돕는 모습을 알고 난 뒤에는 처음의 이름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영화가 보여주는 변화도 갑자기 모두가 전쟁의 의미를 깨닫고 평화주의자가 되는 식은 아니다.
오히려 함께 생활하면서 상대를 실제 사람으로 알아버렸기 때문에 이전처럼 단순하게 적이라고 부르기 어려워지는 쪽에 가깝다.
동막골 사람들은 왜 ‘어느 편이냐’고 먼저 묻지 않았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군인들보다 동막골 주민들이었다.
그들은 전쟁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보면 순진하고 위험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지가 한 가지 흥미로운 결과를 만든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속한 집단보다 눈앞의 행동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어떤 군복을 입었는지보다 지금 배가 고픈지, 도움이 필요한지, 마을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보통 많은 정보를 알수록 사람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보가 오히려 사람을 제대로 보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출신 지역, 직업, 학교, 나이, 경제적 상황처럼 사람을 빠르게 설명할 수 있는 정보는 편리하다.
문제는 설명이 판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런 집단의 사람이니까 아마 이럴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보기 전에 결론부터 내리게 된다.
동막골에는 그런 사전정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군인들이 다시 한 명의 사람으로 보일 공간이 생긴다.
마지막 이름|‘같은 편’이 아니라 ‘같은 마을을 지키는 사람’
영화 후반부에 전쟁은 결국 동막골까지 들어온다.
미군기가 적군의 공격으로 추락했다는 오해가 생기면서 마을이 폭격 대상이 되고, 국군·인민군·미군 병사들은 동막골을 지키기 위해 함께 움직인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완전히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다는 점이 아니다.
국군이 인민군이 된 것도 아니고, 인민군이 국군이 된 것도 아니다.
자신의 과거와 소속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보다 더 현실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것을 지키기로 선택한다.
나는 이것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함께하기 위해 반드시 모든 생각이 같아질 필요는 없다.
출신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며 서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어도, 지켜야 할 것이 같다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동막골의 병사들은 이념적으로 하나가 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과 공간을 지키는 일에서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군복만 보였다.
그다음에는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 보였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보였다.
마지막에는 자신과 함께 마을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보인다.
관계가 달라진 것은 상대의 소속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
상대를 바라보는 거리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전쟁에서는 상대를 ‘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래야 총을 겨누는 일을 망설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막골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너무 가까이에서 봐버렸다.
같이 먹고, 웃고, 일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알게 됐다.
그래서 결국 어려워진 것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아니라
다시 상대를 단순한 ‘적’이라고 부르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팝콘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장면
현실적으로 가장 말이 되지 않는 장면은 수류탄이 터져 팝콘이 눈처럼 내리는 장면일 수 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나는 오히려 다른 부분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서로 죽여야 했던 사람들이 며칠 동안 같은 공간에서 살아보고 상대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싫어할 때 실제 그 사람을 알고 싫어하는 경우보다,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의 역사나 이념을 자세히 설명하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아주 단순한 실험을 한다.
서로 적이라고 배운 사람들을 전쟁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작은 마을에 함께 넣어두고, 그들이 서로를 충분히 가까이에서 보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에 묻는다.
그 이후에도 처음처럼 쉽게 총을 겨눌 수 있겠느냐고.
그래서 나에게 《웰컴 투 동막골》은 단순히 전쟁 속 평화를 이야기하는 영화보다 한 사람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관계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영화로 남는다.
이 생각을 다른 영화와 이어서 본다면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이미 결론을 내려버린다면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군복과 소속이 상대를 ‘적’이라고 먼저 규정한다. 《관상》에서는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의 성격과 미래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방법은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한 사람을 직접 알아보기 전에 내려진 판단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문제 앞에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할 때
동막골의 병사들은 원래 같은 편이 아니었지만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하나의 문제 앞에서 함께 움직인다. 《카트》에서도 각자 다른 사정을 가진 노동자들이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서 공동의 행동을 선택한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시대와 공간을 다루지만, 개인이 ‘우리’가 되는 순간을 비교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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